난 텔레비전에 적대감이 없다. 사실 대부분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쓰레기같다는 쪽으로 생각이 굳어가는 편이지만, 나도 그 쓰레기를 종종 시청한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기력이 없어 아무 것도 하기 싫을 때, 텔레비전처럼 날 편안하게 하고 원기를 보충해는 것도 없다. 출근을 앞둔 몽롱한 평일 아침, 괜히 무기력한 휴일 오후, 딱히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없다하더라도 텔레비전을 켜놓는 것만으로 피로가 줄어들 때가 있다.
그런데 텔레비전은 딱 그 정도다. 여기에 삶을 빼앗긴다거나,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신경을 너무 쓰는 것은 좋지 않다. 난 <천사의 유혹>이 요즘 가장 재미있는 드라마라고 생각하지만, 신현우가 복수를 하면 어떻고 안하면 어떤가. 궁금하긴 하겠지만, 종영 1달만 지나면 그런 드라마가 있었는지조차 잊어버릴 거다. <무한도전>의 식객 뉴욕편에서 박명수편이 이겼든 유재석편이 이겼든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 (물론 나는 오늘 오전 식객 뉴욕편을 보면서 내심 박명수편을 응원하고 있었다)
내가 '방송 평론'이란 용어에 낯설어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물론 세상의 많은 현상은 평가받을 가치가 있다. 특히 요즘과 같은 대중문화의 시대에, 광고든 방송 프로그램이든 만화든 지적인 작업의 개입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나 이걸 어디까지 본격적으로 하느냐의 문제다. 내가 영화평에 관심이 많고, 한때 그쪽으로 공부를 했기 때문에 방송을 조금은 백안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국을 벗어난 해외 어디를 봐도 방송 평론가란 사람은 본 적이 없다. 한때 영미권 문화이론 연구자들이 방송 평론을 한 적이 있지만, 그건 순수히 아카데미 안의 연구였을 뿐이며 그나마 대중문화 평론의 주류가 되지도 못했다. 프랑스나 독일이나 일본의 연구자들이 방송을 평론하다는 얘기는 과문하기 때문인지 들어본 적이 없다. 영화는 이미 이론적 평가의 대상으로 올라온 상태지만, 텔레비전은 앞으로도 그럴 것 같지 않다. 이건 단지 방송이 영화에 비해 역사가 짧다는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방송은 진지한 지적 평가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방송 평론이란 것은 가구 평론, 자동차 평론, 소프트웨어 평론, 과자 평론 등의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딱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이글루스를 포함해 내가 자주 가는 여러 사이트를 보면 방송에 대한 이런저런 게시물들이 많이 올라온다. 개중에는 제법 사려깊고 통찰력이 있어 '평론'이라 부를만한 것도 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그런 정성들인 글을 읽다보면 "정말 할 일 없는 사람 많구나"라는 혼잣말이 나올 때가 있다. 연예매체를 통해 생산되는 이런저런 '논란 기사'도 마찬가지다. <패밀리가 떴다>에서 진짜 물고기를 낚았는지 아닌지가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무한도전> 멤버들이 뉴욕에 가서 영어를 못해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것이 그렇게 안타까운 일인지,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죽은 뒤 시청률이 떨어진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난 도저히 알지 못하겠다. 나도 가끔 그런 기사를 클릭할 때가 있지만, 10초만에 읽고 돌아나오는 기분은 허탈할 뿐이다.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나도 잘 알지 못하지만,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진실성 여부 논쟁에 빼앗길 시간이 없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 2009/12/05 13:05
- ESSAY
- myungworry.egloos.com/5188604
- 2009/12/03 01:16
- ESSAY
한국의 독립영화, 학생영화, (그런 것이 있다면) 예술영화 속 등장 인물들은 왜 그렇게 하나같이 찌질하고 한심하고 그래서 안쓰러운지. 그래서 그들의 행동을 보는 것이 무슨 동물의 왕국을 보는양 흥미진진한지. 이런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아마 그다지 선한 사람만은 아닐 것 같다는 느낌. 열등감과 질투가 심하고, 분노 조절이 안되며, 타인을... »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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