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변의 여인
감독 홍상수/출연 김승우, 고현정, 김태우, 송선미 /127분 /한국 /2006
홍상수의 신작 '해변의 여인' 중반부까지는 사실 지루한 편이다. 술자리만 만나면 괴물이 되는 사람들이 다시 등장하고, 경쟁자의 눈을 피해 수작을 거는 남자들이 보인다. 한 남성 예술가가 비슷한 것도 같지만 사실은 다른 두 여성을 번갈아 만난다는 설정도 비슷하다. '극장전'을 통해 다음 단계로 도약을 하는 듯 보였던 홍상수가 다시 한걸음 물러선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해변의 여인'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여성 두 명의 대작이 등장한다는 거다. 내 기억에 의지하면 홍상수 영화에서 남성 둘이 술자리를 가진 적은 많아도, 여성 둘이 술을 마신 적은 없다. '강원도의 힘'에서 강원도에 놀러간 친구 3명이 함께 술자리를 한 적은 있지만, 주연을 제외한 인물들의 비중이 약했던데다가 1:1 대작이 아니었다.
홍상수 영화의 형식적 특징은 '반복과 변주'다. 바로크 음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양식을 홍상수는 7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공들여 쌓아왔다. 홍상수 영화 속 남자 주인공들에겐 여성 등장인물도 일종의 반복과 변주로 기능해왔다. '생활의 발견'을 기억해보라.
영화 속 두 여성은 일종의 도플갱어다.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도플갱어. 서양 전설은 도플갱어를 보면 죽는다고 전한다. 주위 사람들은 두 여성이 비슷하다고 말한다. 실제 고현정, 송선미는 미스코리아 출신 배우로서 키가 매우 크고, 말투도 비슷하게 조련돼있다.
근데 두 여성이 나란히 술을 마신다. 도플갱어가 만난 것이다. 마이클 만의 '히트'에서 로버트 드니로와 알 파치노가 만난 장면 같다고 할까. 미국을 대표하는 두 메소드 연기 배우는 지금까지 '히트'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같은 영화에 출연한 적이 없다.
도플갱어는 만나면 죽는다. 그래서 고현정과 송선미의 술자리는 홍상수 영화의 파열을 의미한다. 전작 '극장전'에서 홍상수는 이미 인간의 지지부진한 삶을 관찰하는데서 벗어나, 영화의 구조 자체에 대해 사유하려고 시도했다. '해변의 여인'에선 '극장전' 이전 작품들을 변주하되, 그 작품들을 패러디한다고 할까. 홍상수의 다음 영화가 궁금해지는 이유다.


덧글
닥슈나이더 2006/09/10 11:40 # 답글
로버트 드니로와 알파치노는 대부 2에서 맨처음으로 함께 출연 했었습니다...........
닥슈나이더 2006/09/10 11:42 # 답글
그런데... 혹시... 본명이 명원??
delfino 2006/09/10 12:15 # 답글
(딴지는 아니고요 ^^ 별거 아니지만) 송선미씨는 SBS슈퍼엘리트 모델 (1996) 대회 출신이죠. 송선미씨가 '모델'인가 SBS 드라마에 처음 나왔을때 참 '촌스럽게' 생겼다고 생각했어요. 보통의 미인과는 다른 개성있는 연예인으로 생각했는데, 이런 제 생각과는 다르게 주위에 송선미씨를 예쁜 여배우로 좋아하는 분이 많더군요. 고현정씨을 닮았다며.고현정을 닮았다는 말을 듣고서야 요즘 얼굴을 보면 약간 닮은것도 같아요. 목소리나 분위기는 다른것 같지만. 외모만 봐서는 고현정과 비슷해요. 송선미씨 측에서 고현정씨를 모델로 삼았는지 모르겠지만 데뷔때보다 갈수록 요즘 더 비슷해지는것 같아요.
보통 닮은 배우는 자매나 형제 역할에도 캐스팅을 꺼리는것 같던데 송선미씨가 나온건 재미있었어요. 이번에는 이렇게 정말 의도적인 캐스팅. 그야말로 '도플갱어' 죠. ^^
myungworry 2006/09/11 00:33 # 답글
to 닥슈나이더함께 출연하는데 대면하진 않죠. 드니로가 말론 브란도 젊은 시절로 나오니.. ^^;
myungworry 2006/09/11 00:34 # 답글
to delfino아 송선미는 모델대회 출신이군요.....제대로 안찾아봐서...ㅋ
닥슈나이더 2006/09/12 11:06 # 답글
뭐 그렇긴 하죠.... 히트에서 둘이 얼굴 맞대고 대화 나누는 장면에서......첩혈쌍웅의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 화면이 꽉~!! 차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