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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7 02:06

극한 고통이 궁금하세요?-단테의 '신곡' 지옥편 REVIEW





부산외국어대 이탈리아어과 박상진 교수가 원문을 번역한 민음사판 단테(1265~1321)의 '신곡' 지옥편을 읽었다.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동시에 뛰어난 삽화가이기도 했던 윌리엄 블레이크의 삽화가 삽입돼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좀처럼 읽히지 않는(코미디에서는 '신곡'을 '새로 유행하는 노래'의 의미로 사용할 때도 있다) '신곡'을 꺼내든 이유는 서경식의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에'신곡'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에 수용됐던 유태계 이탈리아 지식인 쁘리모 레비는 동료에게 '신곡'의 지옥편을 암송하여 들려주며 지상에 펼쳐진 지옥을 견뎌냈다.

단테는 중세의 총합이자 르네상스의 시작이었다. 그는 그리스, 로마의 고전과 중세의 신학, 철학, 자연과학을 두루 섭렵했다고 한다. 중세의 총합이라 할 수 있는 이유는 '신곡'의 카톨릭적 영향력 때문이다. 영향력 정도가 아니라 '신곡'은 다가올 신의 심판을 증거하고, 신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자의 말로를 경고하려는 강한 목적성을 띤 책이다. 반면 르네상스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이유는 '신곡'의 풍부한 인문학적 상상력 덕분이다. 르네상스는 잘 알려져있다시피 그리스, 로마 문화의 찬란함을 계승시키자는 목적을 띠고 있다. '신곡'은 그리스, 로마 신화, 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없이는 독해가 불가능한 책이다. (물론 내가 읽은 번역판에는 상세한 각주가 달려있다)  

'신곡'을 요약하자면 단테가 다녀온 2박3일간의 지옥 여행기다. 안내자로는 위대한 고대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나섰다. 생전 죄를 저지른 죄인들은 지옥에서 말로 다할 수 없는, 지금 생각해도 몸서리가 처지는(이런 식의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고통을 받고 있다. 뜨거운 모래밭에 머리부터 거꾸로 처박혀 있기도 하고, 꽁꽁 얼어붙은 빙판 위에 목만 내놓은 채 얼려져 있기도 하다. 턱부터 항문까지 찣겨있다가 아물 때쯤이 되면 다시 악마가 살을 찢어놓기도 하고, 피부가 갈고리로 벗겨지기도 한다. 난 공포영화 팬이 아니라 잘은 모르겠지만 현대의 공포영화 중 이런 고통을 표현한 작품이 있었을까. '지옥의 수도사'를 자처했던 '헬레이저'의 핀헤드가 곧잘 탱탱한 인간의 피부를 찢기도 했던 것 같다. '스폰'이나 '콘스탄틴' '헬보이' 등에 잠시 스치듯 나왔던 지옥 풍경은 CG 티가 너무 확연해 하나도 뜨거워보이지 않고, 오히려 추운날 손을 녹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형벌, 고통, 공포가 어떤 식으로 구현되는지 살피고자하는 악취미가 있다면 공포영화를 보는 대신 '신곡' 지옥편을 천천히 읽으며 머리속에서 그 모습을 그려보는 것도 괜찮겠다. 그냥 빨리 읽고 넘어가지 말고 머리 속에서 상상을 잘해야 한다. 아마 당대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 신앙심이 갑자기 돈독해졌을 수도 있겠다.

좀 황당하다고 생각되는건, 단테보다 먼저 죽은 그 모든 신화속, 역사속 인물들, 심지어 자신의 정적이나 이념적 반대자들이 지옥에 있다고 마음대로 주장해도 되느냐 하는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박정희는 제1지옥에서 살이 찢기는 형벌을 받고 있고, 김일성은 제2지옥에서 불 비를 피해 도망치고 있으며, 스탈린은 제3지옥에서 뱀에게 물리고 있다, 내가 그걸 보고 왔다고 주장하는 식인데, 그렇게 얘기하고 책을 내도 되는건가. 참고로 위의 그림은 인터넷에서 구한 단테의 지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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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sang 2008/02/17 20:32 # 삭제 답글

    그림 때문에 민음사 판이 당기긴 했는데 전 이마미치 도모노부의 <단테 신곡 강의>를 사려고요. 악취미는 없지만..
  • myungworry 2008/02/17 22:56 # 답글

    연옥, 천국 편도 있으니 악취미라고 할 순 없지요.ㅋ
  • 유리 2009/06/24 20:24 # 삭제 답글

    박상진 교수님은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입니다
  • myungworry 2009/06/24 22:53 #

    네. 잘못 알았군요. 수정했습니다.
  • 페코 2009/06/26 00:06 # 답글

    문장은 멋진데 저 황당한 설정 덕분에 꽤 웃었어요...ㅋㅋ 단테 이 초딩아! 이래가며-_-;
  • myungworry 2009/06/26 14:27 #

    좀 웃기죠? 그래도 명작으로 남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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