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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6 00:58

퇴근길, 베스킨 라빈스 ESSAY

난 베스킨 라빈스의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예전 혼자 살 때도 가끔 파인트를 사서 냉장고에 두었다가 먹곤 했다. 4000원 가량에 즐길 수 있는 행복이었다. 이제 파인트는 6000원이 넘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문득 베스킨 라빈스 생각이 났다. 마침 성내역에 내리면 베스킨 라빈스 대리점이 있다. 들어가니 나보다 5살쯤 나이많아 보이는 남자가 이것저것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있었다. 고르기 힘들었던지 "오랜만에 오니 이거 원..."하며 겸연쩍게 웃는 모습이었다. 아르바이트 종업원은 별다른 말 없이 미소로 응대했다. 나는 여느때처럼 파인트를 주문한 뒤 라스베리 치즈 케이크, 매드 포 초콜릿, 월넛 종류의 무언가(고른 뒤에 쉽게 이름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매번 들를 때마다 새 아이스크림이 나온 것 같다는 점은 이 가게의 장점이다)를 골랐다. 내가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와중에 나와 나이대가 비슷한 남자 하나가 들어와 패밀리를 주문했다. 그가 다섯 가지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사이 난 값을 치르고 가게를 빠져나왔다.

성내역 부근의 베스킨 라빈스 대리점에 오후 9시쯤 들르는 남자들이란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삶을 살고 있을 거다. 오랜만에 왔다는 남자는 그간 가족에게 조금은 소홀했을지도 모르고, 패밀리 사이즈를 주문한 남자는 이미 아이가 2명쯤 있는지도 모른다. 나도 언젠가 패밀리 사이즈를 필요로 할 것 같고, 주문에 서툴러질 수도 있다. 사람 사는게 거기서 거기다.

요즘 읽고 있는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였다면 이런 풍경을 "무던한 중산층 남편 노릇하기도 신물이 난다"고 표현했을 거다. 그러나 난 리처드 예이츠가 아니고, 지금이 1950년대 미국도 아니다. 출퇴근길에 꼬박꼬박 챙겨드는 이 책의 진도가 빠르게 나가지 않는 이유도 거기 있는 것 같다. 난 중산층의 삶에 대한 예이츠의 조롱기가 조금 불편하다. 오늘 저녁 베스킨 라빈스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면서 난 아무런 슬픔도 느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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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09/11/06 09:41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myungworry 2009/11/06 10:14 #

    네~
  • 데르수 2009/11/07 00:55 # 답글

    전 저장하려고 산 파인트를 단번에 먹어치우면서 슬픔을 느낌.
  • myungworry 2009/11/07 10:45 #

    음....다음번엔 패밀리를 사보면 어떨까.
  • 2009/11/08 21:16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myungworry 2009/11/08 22:58 #

    음...파인트는 원래 단번에 먹어 치우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란 말인가.
  • sang 2009/11/09 23:09 # 답글

    그 소설의 주인공은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싶은.. --?
  • myungworry 2009/11/10 10:31 #

    1950년대 미국이라면 확실히 베스킨 라빈스는 없었을거 같아요. (있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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